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난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위저드 베이커리 - ![]() |
억울함. 친엄마에게 내버졌던 기억을 가진 열 여섯의 소년. 그 엄마가 죽은 뒤 재혼한 아버지와 새어머니, 의붓여동생이 이룬 가족은 자신의 존재가 없어야 완벽해 보인다. 새 어머니 배 선생은 냉담함과 날카로운 말들로 그를 보이지 않게 학대하고, 점점 집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소년은 새 어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 매일 빵집에서 빵을 사서 제 방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설상가상 의붓 여동생 무희를 성추행했다는 누명까지 쓰고 집에서 쫓기듯 뛰쳐나와 급한 마음에 동네 빵집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그 빵집 주인은 마법사! 세상의 어긋난 균형을 맞추어야하는 운명을 지닌 마법사는 사람들이 원망과 증오로 어그러뜨린 균형을 바로잡느라 잠잘 틈도 없다.
선택과 그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소년 자신은 의붓 가족을 맞이하는것을 거부하지도 않았고, 결정하지도 않았지만, 그 가족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것은 매우 억울한 일이다.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새어머니와 의붓동생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방관이다. 자신의 선택한 상황에 대해 책임마저 방기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소년이 배 선생으로부터 차근차근 밀려나고 냉랭한 대우를 받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짊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도 선택 그 자체라는 걸 몰랐던게다.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134쪽
따뜻한 말이나 살가운 행동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까칠한 마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년에게 아픈 말을 하고, 그의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섣불리 '구원의 손길' 따윈 뻗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한 생명을 함부로 했다가 큰 댓가를 치룬 탓이기도 하다. 그것으로 그는 세상에 '하찮은 생명'이란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어떤 존재도 함부로 살리거나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마법사의 저 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 모두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힘들다고? 괴롭다고? 억울하다고? 잘 생각해봐, 네가 선택했던 건 아니었니? 그 사람이 네게 반했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체인 월넛 프레첼을 먹여봐. 그렇지만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운명의 끈이 생긴다는것도 잊지마.
누군가가 사라졌으면 좋을 정도로 밉다고? 마지팬 부두인형이 딱이지.상대의 머리카락을 몰래 넣고 저주를 걸어서 먹어봐. 하지만 그의 눈을 멀기를 소원했다면 너 역시 최소한 눈 하나는 잃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니까. 사랑에 빠지겠대서 그렇게 해 줬더니, 이제 너무 사랑하는게 지겹다니 책임감이 없는거잖아.
소년은 빵집에 머무르며 계속 고민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걸까?...하지만 의지나 목적이 없는 우연한 존재들이라고 해도 서로를 향해 손을 뻗으면 그때부터 이유가 만들어진다니,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것은 인생을 방관하는 것. 어쩌면 전 우주를 통해, 오롯이 혼자만 따로이 존재할 수 있는 존재란 불가능한 모양이다. 내가 지금 이토록 힘들다고,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해 본들, '네 죄는 인생을 낭비한 것'이라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것이니.
문체는 유머러스하면서도 간결하고, 이야기는 동화 같으니 쉽게 쉽게 읽힌다. 매혹적인 성장소설이다. 냉랭한 마법사는 매력적이다. 사실 이 책은 환상동화의 플롯처럼 보인다. 현실 - 환상세계 -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기본 구성을 따른다. 현실로 돌아와서 더욱더 튼튼한 마음으로 고통을 극복한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그러한 구성이 책의 매력을 떨어뜨리진 않는다. 재미있고 매력적인 청소년 소설이기도 하다.
나는 소년이 타임 리와인더를 삼키지 않았다는 결말을 택했다. 나란 인간은 냉소적이고 까칠하고 나약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만이라도 좀 튼튼했으면 좋겠다. 소년은 어쨋거나 현실을 피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좀 보내더라도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간판을 다시 만나게 되기를.
뱀발)
아 그러고 보면 나도 마법의 빵가게가 필요하긴 한데. 주문장을 제출 해 볼까.
그렇다면 마법사님 저는요.
망각 기능을 섞은 쿠키를 부탁해요. 이왕이면 내가 잊어야 할 기억들에 엮인 사람들의 기억까지 싹 지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하나 더 주문할 수 있다면 용기가 듬뿍 들어있는 초코 케익을 먹고 싶어요. 용기 게이지가 너무 높아서 만용이 될 지라도 달콤하다면 얼굴에 철판 까는것에 더욱 도움이 될 거에요. 있잖아요. 사실 정말 필요한 게 더 있긴 한데, 시간 빨리 감기가 되는건 없을까요?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저주하는 주문이 아니니까 좀 쉽지 않을까요? 네? 아...그렇죠. 네.... 현실을 피하려고 하는건 마찬가지에요. 그러게요... 당신이 쉽게 주문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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