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즈


바람과 낙엽의 축제 - 경주 보문단지의 십일월


 

 

 

 

 

 

 

 

 

십일월의 호숫가에서

차갑고 푸른 고요의 가장자리를 서성이다가

억새와 햇살, 영롱한 물무늬의 기억을 안고

그곳을 떠나왔다.

 

쇠잔한 오후의 빛이 넘실거리는 자동차길을 따라

잎 진 가로수들 사이를 천천히 달렸다. 

 

가을이 떠나가는 빈 자리로

맑고 차가운 바람이 몰려들었다.

 

 

 

 

 

 

 

한적한 잔디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무수히 많은 작은 화염으로 불타오르는

단풍나무를 만나러 왔다.

 

 

 

 

 

 

 

태양의 입맞춤으로 황홀해진 단풍잎들은  

자기 존재를 버리고 반쯤 투명해져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빨간 별들을 향하여

나는 허기진 손을 뻗었다.

 

 

 

 

 

 

 

피부 속에 감추어 두었던 그리움을

활활 불태우는 한 생의 마지막 순간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화려하여

나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조금 더 높은 언덕 위애는 노란 단풍나무가

또다른 빛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햇살가루가 부서져 내리던 그곳에서

나는 스러져갈 또 하나의 가을을 추억할

빨강, 노랑 단풍잎을 주워 들고

무지개빛 떠도는 비누방울 같은

여리고 투명한 행복감을 느꼈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나무들도

황금빛 외투로 치장하고

근위병처럼 근엄하게 있었다.

 

 

 

 

 

 

 

여름과 함께 초록이 떠난 자리에

이렇게 금빛 추억이 남아

허공을 곱게 빗질하고 있었다. 

 

 

 

 

 

 

 

나무의 꼿꼿한 자세가 믿음직하여

나는 그의 발치에 기대 앉았다.

 

빈 무릎에 떨어지는 햇살 속에서

어른어른 잡히지 않는 빛의 무늬 같은

오랜 그리움을 응시했다.  

 

 

 

 

 

 

 

머리 위에 드리운 금빛 잎새들이

내 쓸쓸한 사랑을 축복해 주었다.

 

 

 

 

버리고 버려도 남는 앙상한 생각의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핏빛 그리움

애잔하게 사위어 가면서도

제 몸 안에

 후생을 기약하는 씨앗을 품었다.

 

 

 

 

 

 

 


홀홀히 떠나가는 뒷모습

바람에 불리어 스산히 흩어지는 마른 이파리들 위로

또다른 낙엽이 날아내렸다.

 

 

 

 

 

 

 

그 숲에서

한 몸 안에 단풍잎의 온갖 색을 다 품고 있는

팔색조와 같은 나무를 만났다.

 

 

 

 

 

 

 

한 그루 안에 나타나는 여러 빛깔의 이파리들을 보고

처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발견한 듯 신기해 하였으나

한 나무의 잎사귀는 모두 같은 빛깔이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나의 편견임을 깨달았다.

촛불의 불꽃에도 하양, 노랑, 주홍, 빨강빛이 섞여 있듯이 

제 몸을 불사르고 있는 단풍나무가

여러 빛깔을 내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단풍 든 나무들 사이를 지나

침착한 소나무의 초록빛 숲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청신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정적 속을 떨며 흐르는 빛,

끝내 꺾이지 않는 의지를 품은 야윈 가지,

다갈색 껍질 속에 외로움을 사려 안은

콩알 같은 씨앗들  

 

 

 

 

 

 

 

가랑잎과 마른 풀과 보석 같은 열매,

형형색색 현란하게 물든 나뭇잎들로

경주의 십일월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숲 속으로 환한 햇살이 스며들고,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듯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숲을 빠져나와

메마른 잔디밭 위를 걸어갔다.

 

봄과 여름과 가을이 흘러

빈 껍질로 남겨진 마른 풀잎들은

새털처럼 가벼워서

살풋 부는 바람에도 푸시시 푸시시 날아올랐다.

 

 

 

 

 

 

 

호수 위로 뿜어지는 분수가

치닫는 바람을 맞아

무수한 물의 입자들이

바람의 갈기처럼 휘날렸다.

 

 

 

 

 

 

 

 

저녁 그림자가 내리덮이면서

풍경은 무채색으로 바뀌어 갔다.

 

물방울들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나무들도 남아 있는 잎새들을 날려 보내고,

그리움이 이끄는 힘으로

내 마음의 기억과 소망도

오로지 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그 낙엽과 바람의 축제 속에서......

 

 

 

 

 

 

 

 

Eddie Higgins Trio- Autumn Leaves

 

 

 

 

 

 

2009/02/17 11:48 2009/02/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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